하얀 만년설로 덮인 히말라야 산 속 동굴 안에서 묵상하고 있던 늙은 수도자가 눈을 떠보니, 자기 앞에 낯익은 방문객이 와 앉아 있었습니다. 그 방문객은 잘 알려진 한 가톨릭 수도원의 원장이었습니다.

“왜 날 찾아오셨소?”

늙은 수도자가 문자, 무릎을 꿇고 있던 수도원장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스승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희 수도원은 한때 젊은 지원자들로 북적댔었지요. 한데 요즘은 영혼의 양식을 얻으려는 지원자들의 발길이 뚝 끊어져 성당은 적막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된 것이 무엇 때문일까요?”

늙은 스승이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살며시 눈을 뜨며 말했습니다.

“그대들의 죄 때문이오.”

수도원장이 놀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습니다.

“죄 때문이라니요?”

“그렇소. 그대들의 무지라는 죄 때문이오.”

“무슨 말씀이신지....?”

눈썹이 하얀 스승이 호수처럼 맑고 푸른 눈을 열어 하늘로 향한 채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업을 떼었습니다.

“당신네 수도자들 중에 변장을 한 메시아가 한 분 계시네. 당신들은 그분을 모르고 있지 않소?”

“저희 수도원에 변장한 메시아가 계시다구요?”

“그렇소”

수도원장은 스승에게 작별을 고하고 수도원을 돌아오며 함께 살아온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아무리 수도자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아도 메시아의 인품과 자격을 갖춘 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도원장은 영적 스승의 말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수도자들을 모아 놓고 스승에게서 들은 사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처음에 수도원장의 말을 들은 수도자들은 모두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부터 수도자들은 자기들 속에 메시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내 앞에 있는 이 수도자가 메시아일지도 몰라!’

그 결과 수도원의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게 되었습니다.

모든 수도자들이 서로를 메시아처럼 대하며 생활했기 때문입니다.

수도원은 곧 기쁨과 감사와 사랑이 흘러넘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수도원의 소문은 꽃씨가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듯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목마른 젊은이들이 사방에서 기쁨과 사랑의 샘을 찾아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수도원의 성당에서는 사랑과 헌신의 영으로 불타는 수도자들의 거룩하고 즐거운 성가가 매일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닙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수도자들이지만, 그들이 가까운 형제들 속에서 메시아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그들의 삶은 기쁨과 행복을 모르는 캄캄한 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 형제들을 메시아처럼 공경하며 살게 되었을 때 그들의 삶에 여명이 동터 왔던 것이지요. 그들이 함께 부비며 살아가는 이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여기게 되었을 때, 그들의 공동체에는 찬양과 감사와 사랑의 향기가 피어나게 되었습니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밝아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웃들의 얼굴에서 하나님 아들딸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늘 흑암 속을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새벽이 밝아 옴을 알아차리는 것을, 저는 ‘생명 감각의 회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 목숨이 천하와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듯이 다른 이의 영혼도 소중하다는 것, 이것을 알아차림이 곧 생명 감각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