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그리워 하면서

그는 19살 푸른 나무가
장맛비를 맞은 후 여름날 장가를 갔다.
신부는 19살 동갑내기였다.

행복했던 신혼의 꿈같은 날도 막 두달을 넘겼을 때
일본은 만주사변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한국의 젊은이들을 징용으로 끌고가던 시기였다.

19살난 신랑은 일본의 북해도의 작은섬 미류도로
징용을 가야 했고
나라 잃은 설움도, 고향 잃은 아픔도 생각할 겨를 없이

펄펄 뛰던 청년은 수 천 미터의 땅속에서
막장 광부가 되었다.
암담한 현실과 캄캄한 지하 갱도에서
병을 앓고 신음하고 있었다.

1945.8.15에 해방이 되었지만
일제의 압박은 포로들을 즉시 본국으로 보내주지 않았고
1945.12.10 꿈에 그리던 조국땅에

몸에 병을 얻어 돌아와야 했다.

병치레 1년 후 22살 때 큰 아들을 낳아 기뻐하기도 잠시
대한민국의 부름을 받아 군대에 갔고
야전공병으로 3년간을 근무하고 다시 고향 땅을 밟았다.

그러나 25살의 청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꿈이 아니었다.

그것은 6.25 전쟁이었다.
전쟁통에 사랑하는 둘째형님과 넷째 형님, 당숙, 숙모,
가족 넷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동족인 북한 인민군의 손에
죽어간 가족들을 뒤로하고 대구의 경산으로
멀고 긴 피난길을 떠나야 했다.

먹을 것이 없는 겨울날
그는 장티푸스라는 열병에 걸렸고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도 역시 두번이나 사경을 헤메게 된다.

「환덕」이라는 북에서 온 친구의 손에
이끌리어 고향으로  또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환덕이는 이미 폐병환자였다.

시골집 단칸 방엔
사랑하는 아내와 4살짜리 아들 그리고
폐병이 깊은 환덕이와 함께 살아야 했다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울고 웃었다.

그 당시 폐병이 들면
동네가 모두다 두려워하며
그 집을 드나들지 못하도록 했다.
아내와 네살바기 아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죽음의 고비를 넘긴 그는
폐병환자 환덕이 뿐만 아니라
고아들, 걸인들, 연약한 자들을 불러들이며
아내와 아들을 힘겹고 지치게 만드는 일을
한평생 계속하며 지냈다.

그의 집은 언제나 북적였다.
많은 사람은 그 집이 편하다 말했다.

훗날 그의 큰 아들은
폐결핵균이 척추로 들어가 허리를 공격했고
신장으로 들어가 한 쪽 콩팥을 떼어내야 했고
췌장으로 들어가 몸을 공격하여
긴 시간동안 고통을 받아야 했다

그는 가족에게 미안할 때면
동산에서 하모니카를 불었고, 웃었다.
기타를 치며 고난의 한 복판에서
연약한 자의 손을 놓지 못했다.

그가 살아온 날들은 격동의 시기요
삶과 죽음이 계속되는 생사의 징검다리를 건넜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넉넉하게 웃었다.
천상병시인같은 웃음이었다.

힘이 들면 하모니카를 불었고
장구와 기타를 쳤으면 흥겨운 노래로
지친이들을 위로하고 웃었다.

그가 주님을 영접하고

자주 부르던 찬송은 460장이다.

84년을 살고 460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그는 이제 소원대로 은혜의 천국
그 나라로 가셨다. 행복한 주님의 품에 안겼다.

자녀들의 가슴 속에 응답의 기적을
그리고 웃음을 남겨준 채,
화창한 봄날, 입춘에 주님께로 떠났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내내
그의 삶은 행복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장례식장엔 자신이 직접 낳은 자녀는 아니었으나
나도 그분의 아들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상복을 입고 상주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가 떠났으나
가족들은 눈물 흘리다, 그를 생각하며 웃는다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인생이기에
이제는 그가 마음껏 주와 함께 찬양하며 즐거워하리라.

그의 아내는 말한다
“참 행복하게 살다 갔고, 마지막까지도 복이었다.”
아내도 울다가 또 환하게 웃었다.

詩作노트
아버님의 삶을 돌아보며 1주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