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軍(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 모윤숙

산 옆 외 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國軍(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國軍(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大韓民國(대한민국)의 少尉(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痛哭(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大韓民國(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祖國(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少女(소녀)도 있었노라.

내 靑春(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祖國(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 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 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慰安(위안)해 주지 않는가?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同胞(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祖國(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나는 봄 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나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少女(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祖國(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 다고.

이 원수의 運命(운명)을 破壞(파괴)하라. 내 親舊(친구)여!

그 억센 팔 다리. 그 붉은 檀君(단군)의 피와 魂(혼),

싸울 곳에 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祖國(조국)의 생명을 불러 일으켜라.

祖國(조국)을 위해선 이 몸 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즐거이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祖國(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모윤숙-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문학은 물론 정치·외교·여성운동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호는 영운(嶺雲).

1931년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북간도 룽징[龍井]에서 명신여학교 교원으로 근무했다. 서울로 와서 배화여자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삼천리〉 기자, 경성방송국 기자 등을 지냈다. 〈시원〉 동인이었던 김광섭·김상용·오일도·노천명 등과 사귀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40년 일제에 저항하는 내용의 시 〈조선의 딸〉·〈이 생명을〉 2편을 발표하여 경기도 경찰서에 구류되기도 했다.